광복절 입니다.
1911년 105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중고등 시절 역사책에서 배웠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105인 사건의 배경엔 ‘신민회’가 있었습니다. 1907년 세개의 민족운동 세력이 조직한 애국 모임입니다. 그 세개의 조직은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 민족 세력,
윤치호를 중심한 황성기독교 청년회(YMCA) 그리고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상동파
입니다.
이 신민회는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무역회사와 무관학교를
만들어 민족 계몽운동과 경제 자립운동 그리고 무장 독립운동을 해나갑니다. 그러던 중 위협을 느낀 일본
헌병대에 의해서 신민회 색출 검거 작업이 들어가고 전국적으로 700여명이 검거되고 그중 123명 재판, 105면이 유죄판결을 받게 되어 105인 사건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붙인 죄목은 ‘일본총독
데라우찌 암살 음모’요 그들에게 가해진 고문도 잔혹 했습니다.
“주먹과 몽둥이룰 이용한 구타
손가락 사이에 철봉을 끼워 손끝을 졸라맨 후 천정에 매달고
채찍으로 때리기
대나무 못을 손톱과 발톱 사이에 박고 튕기기
못을 박은 널빤지에 맨몸으로 눕히기
온몬에 기름을 바른 후 인두와 담뱃불로 지지기
참 대나무를 양쪽에서 잡고 위에서 아래로 몸통 훑어내리기
추운 겨울에 물을 몸에 끼얹어 그래로 얼려 얼음기둥 만들기
입을 벌려 혀를 빼낸 후 담배 연기 불어넣기
물젖은 종이를 얼굴 전체에 발라 질식시키기
입에 재갈을 물리고 머리털을 선반에 잡아 맨 후 앉을
수도 설수도 없게 좁은 공간에 세워놓기
사흘간 굶긴 후 보는 앞에서 만찬 벌이기
기상천외한 고문 방법들…
그런 잔인하고 정말 몇 분도 버틸 수 없는 가혹한 고문
앞에서 그들은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합니다.
고문을 통해 일본 헌병들이 원하는 것은 세가지 였습니다.
-허위 자백 (배후에 선교사들이 있다)
-개심 (마음을 바꿔 민족운동을 그만 두겠다)
-배교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겠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105인
중 80%가 그리스도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양심을 거스를 수 없었고 신앙을 배교할
수 없어 그 혹독한 고문과 죽음의 공포를 이겨냅니다.
그들이 감옥에서 부른 찬송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예 개심 못하는 놈 때려죽이고
예예 개심 하는 놈은 살려 내어서
고관대작 부귀영화 누리게 한다.
예예 개심 할 수 없는 이내몸이니
형장 아래 결박 지고 꿇어 앉아서
쳐죽이는 모둠매를 기다립니다.
스데반이 바라보던 열린 저 하늘
내 주 예수 서신 것을 바라보면서
내 영혼을 받으소서 기도합니다.
“감옥은 지옥이 아니라 밖에서 얻을 수 없는 은혜를 경험하는 곳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는 곳이 바로 감옥이요 고난이라”
그들이 마음에 새기며 읽고 암송 했던 말씀도 남깁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베드로전서 4장 12-14절)
값진 희생으로 얻은 자유 대한 국민
김의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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