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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20240317 (김찬경 집사)

작품 2023 60.7cmx50cm [Acrylic & Origami & Mixture]

시온성 [천성으로 향하는 기다림]



 어린아이로 웃픈 소망의 옷을

 

김찬경 집사

Chankyung Kim

Violinist Drawing Pictures

 

인생백세시대에 광주시립교향악단 243개월, 인생의 4분의 1을 그 안에 있었으니 참 긴 시간 연주가로 지냈다.

 

웃음이 많던 바이올리니스트 후배가 있었다.

결혼 안 한 동생들을 남긴 채 부모님이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님이 먼저, 몇 년 채 지나지 않아 곱던 어머니도 암으로 돌아가셨다.

맏이로 참 아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장지까지 8명가량의 運柩(운구) 인원이 필요했고 그 중에는 머리를 곱게 묶은 단정한 여자가 한 명 끼어 있었다. 발인예배 후 목사님은 그 긴머리에게 여자는 빠지세요몇 번의 주의를 주었다. 꿈적도 하지 않는 긴머리여자. 사실 그녀는 미술을 하는 좀 독특한 남자였다. 목사님의 절실한 요청이 후배의 귀에 들어왔고 긴 머리 남자를 알고 있던 喪服(상복)의 후배는 웃음 세포가 간질거려, 때 모른 웃음을 참아내느라 곤욕을 치렀다.

슬프지만 우스운 웃픈 현실(?)이 때론 살아가는 힘을 발휘하지 않는지?

 

고난의 무게가 가슴과 어깨를 짓누르고 명치가 아려오던 시절이 있었다.

웃는 사람들 사이에 나만 하회탈을 쓴 낯선 몸짓으로 어설픈 춤사위를 벌이는 이중의 감성으로 길게 머물러 있었다.

돌이켜 상처는 또 다른 깊은 생채기를 만들고 삶에 끊임없는 물음의 회오리를 만들었다. 행운이란 나의 언어가 아닌 타인들의 전유물로만 느껴졌다.

이미 주신 복을 세어봄이 그저 찬송의 입술이었고 나에게 주어진 복은 지워진 통장잔고처럼 허탈했다. 그렇게 청년의 시간을 탕진했다.

 

얼마 전 가족여행을 했다.

버겁기만 하던 두 딸은 이제 날개가 되었고 여행지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주님의 음성이 되어 평온한 파도로 출렁거렸다.

매번 고난은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언제부터인지 자장가가 되기도 하고 길을 재촉해 잰걸음을 만들기도 한다.

잃어버린 청년의 시간은 속 깊은 나이테를 만들었고 멀게만 느껴졌던 回甲(회갑)의 시간에 다다랐다.

 

빠른 시대 흐름은 세대 간의 갈등, 생각의 양극성 다문화와 혼돈, 변위 바이러스 등

격변의 스나미는 걷잡을 수 없다. 뜻과 삶을 지탱하기에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나에게 그토록 버거웠던 고난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다의 파도가 자장가가 되는 기적은 밖이 아닌, 맘속 자라난 실오라기 같은 소망의 싹이었으며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한 간절함임을 고백한다.

짧은 기도, 말씀의 어설픔, 믿음의 미약함이지만 간절하게 눈물 흘렸던 절실한 응답이 이제야 물결처럼 평온하게 다가오곤 한다. 참으로 길고 긴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기도가 이루어짐은 은혜이며 이루어지지 않음은 주님의 보살핌이라는 그 의미를 새기며 주님의 뜻을 매번 여쭙는다. 그리고 기도한다. ‘주님 이루어 가실 그 세계를 믿습니다설령 그 길이 험할지라도……

 

바이올린에, 그림을 그리며 아이들의 교육을 동화로 만드는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인생의 반을 훌쩍 넘긴 靑老人(청노인)은 주님의 음성에 잘 노는 어린아이로 웃픈 소망의 옷을 입는다.




댓글

  1. 김선생님의 끝나지 않은 힘든 삶의 여정이 가슴으로 느껴져 잠시 먹먹해졌습니다.
    훌륭한 부모님, 다들 잘 나가는 형제 자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데 김선생님만 계신 자리에서 밤마다 하늘을 바라보고 계셔야 하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돌에 발이 걸려 넘어졌을 때, 돌을 원망하기보다 그 돌을 짚고 일어서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 합니다. 두 날개가 되어준 두 따님과 함께 더 높고 더 넓은 하늘을 마음껏 날아오르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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