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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20240714 (왕평관 집사)

 


안녕하세요. 저는 열정나무 왕평관 집사입니다.


어릴 적, 저는 약 8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장흥의 관덕리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관덕리는 '가지동'이라고도 불리며, 읍내에서 약 5리 떨어진 곳으로, 불교와 미신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마을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옆집에는 누에를 치는 집이 있었고, 집 앞 골목길 초입에는 다리가 불편한 20대 초반의 송자 누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누나는 언제나처럼 성경책을 손에 들고 읍내를 다녀오곤 했습니다. 그녀는 뜨거운 여름 아지랑이가 보일 때에도 변함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화재 사고로 소천한 송자 누나는 저에게 처음 성경 구절을 알려준 착한 누나였습니다. 그녀 덕분에 저는 어릴 적 '교회란 무엇일까? 믿음이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대학교에 다니는 형의 권유로 처음 성당에 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성경책을 접하고 읽으며 어렴풋이 종교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빠지지 않고 다니시는 권사님이셨습니다. 어느 날, 고민과 방황 속에 있던 저에게 어머니는 전화로 "평관아,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할까 얼버무리자, 어머니는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음에요"라고 대답했던 질풍노도의 시절이 떠오릅니다.

 

200912, 아내 문정선 집사의 권유로 다일교회 크리스마스 예배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담임목사님께서 '예수님과 삭개오의 만남'에 대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8) 그 날 담임목사님의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그 이후로 못 이기는 척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하루는 아침 7시에 출근하여 성경책 한 장 읽기와 데일리 브레드(Daily Bread)로 시작합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과 묵상으로 시작하는 이 시간이 참 좋습니다. 한 주간도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 되시길 바라며, 제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 글을 쓴다는 것이 맞을까 고민했지만, 아내 문정선 집사와 이야기한 끝에 조심스럽게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1. 왕평관집사님 고향이 장흥이시구나?
    개인적으로 장흥을 많이 좋아합니다.
    장흥은 이청준이나 한승원 같은 소설가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가사문학을 꽃피웠던 관서별곡을 쓴 백광홍의 고향이기도 해서지요.
    뿐만 아니라
    제가 만난 좋은 분들의 대부분이 장흥 출신이었습니다.

    송자누나와 어머니 얘기 잘 읽었습니다.
    모두 이런 분들의 기도 덕분에 집사님께서 주님을 영접하시게 되었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다일 교회에서 얌전한 왕집사님을 뵐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합니다.

    문정선 집사.
    좋은 부인을 만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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