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샘(44+) 충만나무 오리온 권사
[어머니의 이야기]
그해 봄. . 다방에서 처음 만난 그 남자는 키가 크고 말랐던 것 같다.
내 나이 21살, 그는 29살...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헤어지기 전에 우린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게 우리의 약혼사진이 될 줄이야.......
그해 가을 나는 경상도 선산에서 전라도 김제로 시집을 왔다....
내 발등을 내 스스로 찧었지....그땐 몰랐지만 ....
시댁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시할아버님은 증산도에 몹시 심취하여 자녀와 손자들을 이끌고
증산교 본부가 있는 전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기신 분 이시라고 했다.
그 덕에 살림살이는 거덜이 나셨지만
그래도 똑똑한 시아버님이 만주에서 장사하여 버신 돈으로 동네에 있는 야산을 헐값으로 사들여 평지로 개간하는 작업을 하시고 있었더랬다. 내가 막 시집오던 그 즈음에 일이다.
남편은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욕심도 많은 그런 사람이었다. 서울에 있는 중앙대학교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 만에 접고 내려와야 했고 월남전에 파병하여 돈을 벌어온 이후엔 철도청 직원으로 근무를 하고 쉬는 날엔 농장을 만들기 위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런 남편 옆에서 나는 하루하루 여러 명의 일꾼들의 밥과 시댁 식구들의 밥을 해대느라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다.
정신없는 세월 속에서 아들 둘과 딸 하나 그리고 사과. 배. 복숭아 과수원과 젖소 목장과 향어양식장이 있는 농장이 우리 앞에 번듯하게 세워져 있었다.
과연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때가 내 나이 34살, 남편 나이 42살.....
42살의 남편은 간경화 진단을 받고 3년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나의 이야기]
“저 높은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나아갑니다.~~~”
새벽마다 잠도 덜 깬 목소리로 올라가지도 않는 이 찬양곡을 부르며 가정예배를 드렸던 저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아마도 짜증이 났을테지요..그 때 제 나이 8살....
3년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저의 아버지는 그 뒤로 엄마와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외갓집은 이미 2대째 교회를 다니고 계셨던 집안이었기에 아마도 아버지는 신앙의 힘으로 희망을 부여잡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이후로 정말 3년의 삶을 사시다 소천하셨습니다.
올해 엄마는 76세가 되셨고 오빠들과 저는 엄마와 함께 자주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제 나이 8살 이후로 우리 가족은 한 번도 주님 곁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삭 같다고... 아브라함의 결단으로 시작된 이삭의 삶처럼 아버지의 결단으로 시작된 우리들의 신앙생활
그 속에서 우린 언제나 안정을 누리며 든든함을 느낍니다.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뿌려주신 그 씨앗을 우리는 삶을 통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맺자고 여행하는 내내 서로 다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이웃에게 진실하며, 내 삶에 성실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네.......^^
충만나무 오리온 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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