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 몽골 ‘은총의 숲’. 사막 한가운데 하나님이 이뤄낸 생명의 기적을 봅니다.
‘멀리 돌아’ 이뤄낸 하나님과의 만남, 광주다일과의 만남
엘림샘(55+) 요셉나무
강호천 집사
인생이 만남이라면 광주다일교회와의 만남은 저에게 행복입니다. 저에게 9년 전 만난 ‘다일교회와 다일의 사람들’은 저의 ‘오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고, ‘하나님 나라의 하루하루를 누리게 하는 좋은 만남’으로 깃들어 있습니다.
또 하나의 만남, 제일 중요한 제 인생의 만남은 물론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모태신앙으로 ‘강제로(?)’ 하나님을 만났지만, 이후 많은 고민과 갈등들은 ‘나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정말 내 삶의 중심이 되시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시는, 그리고 따뜻하게 저를 지켜보시며 힘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이 만남은, 제 삶의 참 좋은 만남이자, 가장 좋은 만남이 되었습니다. 이 작은 자리를 통해 저의 하나님과의 만남 이야기를 드려보고자 합니다.
많은 모태신앙들이 그렇듯, 어느 순간 개인에게 하나님은 흔들립니다. 제도 기독교의 힘없음과 한심함이 거기에 더해져 도무지 여기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사춘기를 살짝 넘어서고, 이성적 판단과 철학적 사고가 움트던 시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 제도 기독교가 강요하는 그런 하나님은 없다, 나에게 하나님은 무엇인가, 왜 하나님인가,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에게 고마웠던 것은, 어리고 젊은 시절에도 질문을 회피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저는 내내 치열하게 묻고 답을 찾고 대답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간 대학은 전쟁이었습니다. 무도한 독재정권과의 전쟁. 제가 출석했던 교회는 왕십리의 대표적인 우리 교단 교회였는데, 이 시기 대학부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치열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노동자들의 외침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날 것인가. 토론식 성경공부와 이어지는 세미나, 대화들은 더욱 깊게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이때 시작된 ‘나의 하나님 찾기’ 여행은 그 곳으로부터 시작, 이제껏 계속된 것 같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 과정에서 언제나 저를 안아주시고, 때로는 강하게 흔들어 주시고, 희망을 갖게 하신 것은 물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신앙적 고민에서 시작된 이 탐험은 신학으로, 인문학으로, 과학으로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대학 친구들과 했던 고민은 스스로의 학습으로, 신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으로, ‘진보적 작은 교회’ 목사님들과의 집중 학습 세미나로 계속됐습니다. 1980년대 당시 우리 신학계의 화제였던 민중 신학과, 해방 신학, 이어 여성신학, 문화신학, 토착화 신학과 한국 신학,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학, 타 종교와의 대화 등등 경계를 뛰어넘는 관심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최근 저의 관심은 ‘과학시대의 신앙과 하나님’으로 옮겨와 있습니다. 미시의 세계와 양자역학으로 풀어보는 세계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계시는가’하는 물음입니다.
이제 굽이굽이 지나온, 그리고 지나고 있는 저의 신앙고백입니다. 저에게 하나님은 이 혼란하고 알면 알수록 충격적으로 이상한 이 세상의 ‘영원한 주인’이십니다. 저의 하나님은 절대가치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우리 세상의 질서, 바른 세상을 향한 진보의 중심‘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자이자 역사하시는 분’이란 뜻도 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의 주인 하나님과 더불어 새로운 나라를 위해 구원의 삶을 살아가신 삶의 표본이자 우리가 따르고 닮아가야 할 예수를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믿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가 시작한 새롭고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세상, 그것을 '오늘 여기'에 이뤄내는 것, 그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이 '의무'를 가지고 있을 뿐, 다른 무엇, 즉 ‘이생과 내생’에서의 그 무엇을 집착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제가 믿는 절대 가치는 세상의 모든 곳의 정의와 평화, 창조질서(생태)의 보존, 그래서 '사랑'으로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즈음에서 사족 하나. 저는 소위 ‘믿어지는 것’과 ‘안 믿어지는 것’의 경계를 지웠습니다. 성경은 ‘진리를 알아 자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서술에 무엇이 들었는지, 거기에 어떤 메시지가 담겼는지,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것만 생각합니다. 넓게, 새롭게 보면서 “아멘, 그런 뜻이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을 믿으며 내가 살았던 가치를 다시 정리하며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잘 살아내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그냥’ 나와 주변이 조금만 더 행복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좋은 이웃’으로 살고자 합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잘 사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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