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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20240825 (성은숙 집사)


 

안녕하세요, 엘림샘(55+) 야베스나무  성은숙 집사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동네 친구 어머님의 전도로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 위치한 득량교회에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제 신앙의 첫 씨앗이 뿌려진 곳이며, 20205월에 교회 설립 100주년 기념 예배를 드린, 여전히 주일마다 50명가량의 성도들이 함께 식사를 나누며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입니다. 친정어머니께서도 이 교회에서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다.

 

중학교 시절까지 저는 주일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초등부와 중등부 예배에 참석하며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려갔습니다. 중등부 시절에는 선생님의 공과를 열심히 들었고, 광주로 고등학교를 가게 될 친구들은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가 자율학습을 하는 가운데서도 예배 시간이 되면 교회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교회는 저에게 언제나 삶의 중심이었고, 그 중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갔습니다.

 

방학 때는 인근 교회에서 열리는 수련회에 참석했고, 12월에는 광주에서 내려오는 대학생 선배님들과 함께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새벽송도 다니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파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성가대와 초등부 교사로 봉사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직장 생활 중 저는 인근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로 공무원이면서도 신앙을 가진 사위를 찾기 어렵다며 바로 허락하셨고, 친정아버지는 남편이 초급 공무원이라 처음엔 제가 고생할까 염려하셨지만, 친정 부모님께 아들처럼 잘하고 동생들도 잘 챙기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는 '하나뿐인 사위'라며 사랑해 주셨습니다.

 

결혼 후 시댁 어르신들은 유교적 전통사상과 불교 신앙을 지니고 계셨고, 저와 남편은 자연스럽게 시댁의 대소사에 참여하며 15년간 교회를 떠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를 다시 품어 주셨습니다.

 

다일교회와의 인연은 딸이 5살 때 광주 동구 운림동의 H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딸이 3학년이 되던 해, 남편이 딸이 학원 다니기 좋은 동네를 찾다가 풍암동에 아파트를 구해놨다고 하여 이사 전에 집을 보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중학교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교회 친구가 아파트 맞은편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저를 보자마자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사실을 이야기하자, 친구는 다일교회에 와서 목사님의 설교를 한 번만 들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마침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시누이들도 신앙생활을 권유하던 차라, 다른 교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다일교회에 나가 15년 동안 쉬었던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목사님의 설교는 마치 제게 주시는 말씀 같았고, 성가대의 찬양은 너무 은혜로웠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목사님께서 광고 시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며 찬양대원을 모집하셨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그 다음 주일 아침 일찍 찬양대 연습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성도들에게 은혜로운 찬양을 드리기 위해 기도하며 찬양대원으로서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5년에 한 번씩 광주 외곽으로 발령이 나 출퇴근 시간이 왕복 2시간 정도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장롱 속에 잠자고 있던 운전면허증을 꺼내 경차 모닝으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운전에 익숙해지면 찬양을 들으며 출퇴근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지금은 소나타로 업그레이드하여 상무지구로 출퇴근하며, 매일 Daily Bread와 극동방송을 통해 말씀과 찬양을 들으며 주님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건강, 자녀와 직장 내 문제들로 급한 기도가 필요할 때면, 운전 중에도 가장 낮은 자세로 간절히 기도드리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상황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15년간 멈췄던 신앙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해 준 친구,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멀어졌던 신앙생활을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목사님과 사모님, 찬양대원님들

가정교회 식구들, 그리고 믿음의 벗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한없는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요즘 매일 듣고 은혜 받은 찬양으로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소개합니다.ㅎㅎㅎ

 


내가 알 수 없는 길로, 내가 갈 수 없는 길로,

가장 좋은 길로 날 인도하시네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나의 주가 이루시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내 생각보다 내 계획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

내 기도보다 내 소망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

내가 알 수 없는 길로, 내가 갈 수 없는 길로,

가장 좋은 길로 날 인도하시네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나의 주가 이루시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나의 지혜로 나의 힘으로, 다 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주의 지혜로 주 능력으로, 더 좋은 것을 내게 주시네

내가 알 수 없는 길로내가 갈 수 없는 길로,

가장 좋은 길로날 인도하시네




댓글

  1. 좋은 간증 잘 읽었습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군요?
    친구 덕분에 다일교회로 나오시게 됐는데 탁월한 선택이 되었군요.

    득량이란 지명유래가 재미있죠?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득량면 비봉리 선소 앞섬(지금의 득량도)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대치하던 중
    아군의 식량이 떨어져
    비봉리 선소에서 식량을 조달하여
    왜군을 퇴치했다 하여
    얻을 득(得)자와
    양식 량(糧)자를 사용하여
    득량(得糧)으로 명명하였거든요.
    물론 득량만 간척으로
    더 많은 양식을 얻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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