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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20241117 (임채향 집사)



안녕하세요. 저는 생명샘 올리브나무 임채향 집사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형제자매님들께서는 교회에 첫발을 내디딘 날을 기억하시나요? 저에게도 그 순간이 있습니다.

약 45년 전, 우연히 김순자 권사님을 알게 되었는, 사실 이 만남도 주님의 계획이셨다고 믿습니다. 어느 날 그녀와 함께 시내버스를 탔는데, 제가 요금을 내려고 하자 그녀가 그 돈을 자신의 가방에 넣더니 10원 정도 저렴한 토큰으로 교체해 요금을 대신 내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죠.

 

결혼을 마음먹고 나서 저는 그녀의 시골 부모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격식 있는 모습으로 마루에 넙죽 엎드려 "따님을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장인어른은 그저 조용히 지켜보셨지만, 장모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우리 딸은 교회를 안 다니는 집에는 보낼 수 없는데 자네 동네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없다고 들었네"라며 걱정을 내비치셨습니다. (알고 보니 함평군 순불면에 마을만 다른 곳) 또한, “딸이 아직 어려서 더 가르칠 게 많으니 당장은 시집보내기 어렵다네.” 하시더군요.

 

저는 장모님께 "장가들면 꼭 교회에 나가겠습니다"라고 약속드렸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제가 가르치며 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장모님의 허락을 받아 결혼이 성사되었고, 지금까지 주님의 은혜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를 교회로 이끈 분이 바로 장모님이셨던 셈이지요.

 

결혼 후, 시댁의 전통대로 첫 제사 준비가 다가왔을 때 33녀중 막내며느리였던 제 아내는 용기를 내어 아버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제사 준비까지는 돕겠지만, 제사에는 절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향교와 깊은 연이 있으시던(호까지 있으신 골수 유교) 집안의 어르신이셨지만, 결국 저와 아내의 신앙을 이해해 주셨고 제 결심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장모님께 드린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한 가지 실수는 제가 가르쳐서 함께 살겠다고 약속한 죄로 딸의 허물을 하나만 꺼내도 그래서 내가 가르쳐서 보낸다 하지 않았느냐며 장모님께서 유머 섞인 타박을 주곤 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깨갱 하고 꼬리를 내립니다.

 

10월의 어느 주일에는 서울 교회 목사님의 이탈로 마음이 상해 2주 정도 영상 예배만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시기에 갑작스럽게 아내가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저는 그 사건을 통해 주님의 메시지를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이 문제는 네가 그렇게 분노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문제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를 이 땅에 보내시고 때가 되면 거두실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주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성령님께서 제 삶을 인도해 주옵소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아멘!”

이 간증을 통해 저의 부족함과 주님의 은혜를 돌아보며,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주님을 더욱 의지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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