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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20240908 (서지원 권사)



"시어머님을 생각하며"


엘림샘(55+) 다니엘나무

서지원 권사


막바지 여름의 길목에서 조금 일찍 모습을 드러낸 무화과를 보니,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님이 떠오릅니다. 맏며느리라며 저를 무척이나 아껴주셨던 우리 어머님.

 

저는 모태신앙이었기에, 믿지 않는 가정으로의 결혼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종가집 장손의 며느리라는 역할은 낯설고 버거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어머님께서는 제사나 차례를 한 번도 지내본 적 없는, 그리고 교회에 다니는 며느리를 탓하거나 구박하지 않으셨습니다.

 

결혼 초 몇 년 동안, 저는 제기(祭器)를 닦고 음식을 준비하여 늦은 밤 제사를 지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님은 저를 위해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또 다른 탕과 음식을 따로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당신 생각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제사 음식은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를 위한 배려로 또 다른 수고를 감내해 주셨던 어머님이십니다.

교회 다니는 맏며느리, 제사와 차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타박하지 않으시고, 대신 당신들의 제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시동생 가정에 맡겨야 하나 고민을 하셨던 어머님. 당신도 오랜 세월 종갓집 장손의 며느리로 힘겨운 삶을 살아오셨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위해 많은 배려와 사랑을 주셨습니다.

 

저희 가정을 제외하고는 믿지 않던 시댁이었지만, 시동생의 갑작스러운 백혈병 진단 앞에서 절박한 심정과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 시댁 전체가 믿음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특히 시어머님께서는 새벽 예배, 수요 예배, 주일 예배를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하시고, 여선교회 활동까지 하시며 정말 신실하게 믿음의 삶을 사셨습니다. 비록 그것이 기복적인 신앙일지라도 말입니다.

가족 모두가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시작한 덕분에, 제사와 차례도 예배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머님의 강력한 주장이 큰 역할을 했지요.

어머님께서는 70대 초반에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완벽한 재활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셨습니다. 저는 많은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꼈고, 어머님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셨을 것입니다. 꼭 다시 걸으실 수 있기를 바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내가 이렇게 교회에도 열심히 다녔고 많은 봉사도 했는데,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불평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희 부부의 임직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시던 어머님이셨습니다.

 

시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신 어머님을 코로나로 인해 1년이 지나서야 뵐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어머님은 요양원에 찾아뵐 때마다 우리의 삶에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또 그리 아니할지라도,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시댁에 믿음의 부모가 되어 주신 어머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추석이 다가오니,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무화과를 사 들고 찾아뵈어야겠습니다.



댓글

  1. 백로입니다.
    가을이 시작되어 이슬이 맺히는 날이죠.
    이슬의 영롱함처럼 맑고 고운 영혼으로
    시어어님의 따뜻한 사랑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지나고 보면 고난도 유익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당시는 감당하기 힘들 뿐이죠.
    무화과가 잘 익게 되면 열매가 벌어지게 됩니다.
    잘 익기 위해서는
    여름의 햇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너무 뜨겁지 않은 햇볕을 자기 몸 속에 받아들이면
    보기좋은 붉은 색으로 익게 됩니다.
    단맛도 깃들게 되고요.
    가끔 감당할만한 고난만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너무 뜨거운 그런 땡볕은 주저 앉게 만들기 때문이죠.
    이번 가을이 권사님께
    더 풍요롭고 은혜로운 계절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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