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옹달샘(30+) 생명나무 윤정호 성도입니다.
다일교회에 출석한 지 5년이 넘어가지만, 저를 아는 분도, 제가 아는 분도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보니 주일 근무로 빠질 때도 많고, 평일 시간도 일정하지 않아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맡겠다는 말을 쉽게 꺼내기 어려웠습니다. 요즘은 저보다 저희 아이들을 먼저 알아봐 주시고 예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담이, 온이 아빠’, 또는 ‘이름은 모르지만 귀여운 아이들의 아빠’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관심이 감사하면서도, 원래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인지라 오히려 아이들 뒤로 숨게 되곤 합니다.
저는 여수의 한 농촌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하루 종일 신나게 뛰어놀다가 해질녘 집에 돌아와 현관 앞에 늘어선 신발 개수를 세던 일입니다. 할머니의 하얀 고무신, 부모님의 흙 묻은 장화, 5남매의 때 탄 운동화까지. 모두 모여야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세대와 가치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때론 다투고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배려와 양보, 갈등이 있을 때는 대화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함께 사는 것”이것이 가족이 제게 가르쳐 준 첫 번째 배움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다채롭던 상황들과 그곳에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옹기종기 함께 살았던 그 곳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깊은 뿌리’가 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제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뿌리 깊은 기억과 경험을 남겨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합니다. 만 1세와 3세, 두 아이를 키우며 가족의 의미, 남편으로서의 역할, 부모로서의 가르침,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명쾌하게 정리할 수도 없고, 정답이 정해져있는게 아니라서인지 아니면 제가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길을 찾듯 더듬더듬 조금씩 헤집어가며 노력해보는 중입니다.
생각해보면 제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함부영 씨의 찬양 ‘나의 노래’의 가사처럼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노래가 좋아서,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던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신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알게 되었고, 기도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투정을 부리며, 때로는 왜 그러시냐며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시작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배움도 없던 제게 신앙은, 길에서 벗어나다 부딪치고 상처투성이로 되돌아오며 길을 만들어가는 ‘핸들이 고장난 자동차’였습니다.
물론 신앙의 길에는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직접 부딪혀 보고 경험해야 더 깊숙이 알아지고 알알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저는 제 삶에서, 그리고 신앙생활을 통해 배웠습니다. 같은 길을 따르지 않더라도, 제 아이들에게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삶의 모양도 있음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때로는 빠른 길을 알면서도 돌아가고, 결과가 뻔해도 미련하게 뛰어드는 것이 저의 믿음의 색깔이라 여기며, 오늘도 한 걸음씩 제 색으로 발도장을 찍어 나가는 사람,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합니다.
늘 주님과 함께하시길 기도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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